1. 두려움은 왜 나를 따라다닐까 – 감정의 실체를 마주하다
두려움은 참 끈질긴 감정이다. 아무리 잘 피해도, 아무리 애써 외면해도,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어릴 적엔 발표 시간 앞에서, 사춘기 땐 친구들 앞에서, 사회인이 된 지금은 새로운 업무나 도전 앞에서, 나는 이 감정이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더 교묘하고, 더 복잡한 얼굴로.
한때는 나 자신을 나무랐다.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왜 쉽게 도전하지 못할까? 세상 사람들은 다 뭔가를 멋지게 해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움츠러들기만 할까? 그때는 몰랐다. 두려움이 약함이나 게으름의 표시가 아니라는 걸. 사실은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이라는 걸 말이다.
두려움은 뇌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감정이다. 내 마음이 '안전'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뇌는 빠르게 경고신호를 보낸다. 낯선 사람 앞에서 떨리는 것도, 발표 전날 밤잠을 설치는 것도, 모두 '혹시 창피를 당할까 봐', '실수할까 봐'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즉, 두려움은 내 자존감과 존재감을 지키기 위한 경계선 같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경계선이 점점 좁아지면, 나는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감정은 본능적이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과 '친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없애거나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알아주고, 대화하고, 그 감정의 말에 귀 기울여보기로.
겁이 많은 나를 위한 감정 일기 – 두려움을 기록하는 법
내가 두려움과 친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감정 일기'를 쓰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다이어트나 운동, 공부 기록을 남기지만, 나는 내 감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꼈는지, 그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최대한 솔직하게 써봤다. 이건 마치, 마음속 감정의 지도 그리기와도 같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상황: 회의 시간에 의견을 말하려다가 그냥 넘김
느낀 감정: 불안, 초조, 망설임
머릿속 생각: 내가 괜히 말했다가 바보처럼 보일지도 몰라
신체 반응: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남
이런 식으로 몇 번 기록을 하다 보면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특히 '공개된 자리', '권위자가 있는 공간',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서 유독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낀 후에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나는 용기가 없어”, “이래서 나는 안 되는 거야” 같은 말로 나를 더 작게 만들곤 했다.
기록은 마치 거울 같았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해줬고, 생각의 자동 반응을 의식하게 만들어줬다. 감정 일기를 쓰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는 것.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할 때, 오히려 감정은 작아지고,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2. 그래도 해보기의 힘 – 작게, 느리게, 나답게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순 없다. 하지만 감정을 안고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분명 있다. 내가 찾은 방법은 바로 ‘작게, 느리게, 나답게’였다.
예전엔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항상 거창하게 계획했다. ‘매일 1시간씩 공부하자’, ‘이번엔 무조건 성공하자’ 같은 결심 말이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몇 번의 실패 끝에 두려움을 키우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아주 작고, 사소하게 시작하는 것. 실패해도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부담 없이.
예를 들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두려울 땐, 발표가 아니라 ‘한 문장 말해보기’부터 연습했다. 모임에서 한 번만 질문해보자고 마음먹기도 했다. 그렇게 작게 해보는 행동들이 쌓이고 나면, 두려움이 줄어들지는 않더라도, ‘나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감각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힘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나답게 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하든, 그건 참고일 뿐. 나는 내가 편하고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감정을 다뤘다. 어떤 날은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나아갔고, 어떤 날은 멈춰서 감정을 쓰다듬었다. 둘 다 괜찮았다. 중요한 건 ‘계속 내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게라도 해봤다’는 경험은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줬다. 마치 두려움 속에서도 나만의 길을 찾는 느낌이었다.
3. 두려움을 없애는 삶이 아니라, 두려움과 손잡고 걸어가는 삶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새로운 환경 앞에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혹은 이전에 실패했던 기억 때문에. 두려움은 내가 무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감정이 있다는 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길이 나에게 의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두려움은 결코 나를 약하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나는 이 감정을 없애려 애쓰기보다는, 그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날 때, “이 감정은 왜 왔을까?” 하고 내 안을 들여다봤다. 처음엔 막연했지만, 조금씩 두려움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실수했을 때 무능하게 보일까 봐 걱정됐고, 무엇보다도 그 상황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겁이 났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아, 내가 겁이 많은 게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구나. 그리고 나서부터는 두려움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 지금은 겁이 나도 괜찮아. 하지만 나, 이걸 해볼 거야. 한 걸음만 내디뎌보자.”
두려움과 함께 걷는 삶이란 결국, ‘감정을 느끼면서도 행동하는 삶’이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확신이 없어도, 어딘가 불안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걸음을 내딛는 것. 그 한 걸음이 어제보다 용감한 선택이 된다.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심장이 떨리더라도 한 마디를 해보는 것, 잘할 자신은 없지만 일단 시작해보는 것. 이 모든 행동은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움직인 결과다.
중요한 건 두려움이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두려워도 괜찮은 나’와 친해졌다. 그 감정이 더 이상 나를 억누르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진짜 나답게 만들어주는 일부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두려움은 찾아온다. 낯선 사람 앞에 서야 할 때, 처음 해보는 일을 맡았을 때, 여전히 마음은 긴장하고 머릿속은 복잡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것을 무조건 밀어내지 않는다. 그저 “그래, 또 왔구나” 하고 말하며 숨을 한 번 고른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나의 속도로 걸음을 옮긴다.
두려움을 없애는 삶은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대신 우리는 두려움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때로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어가는 식으로. 두려움은 내가 인간이라는 증거이며,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인이다.
이제 나는 두려움을 적당한 거리에서 마주보며 살아간다. 때론 앞서가기도 하고, 때론 곁에 머물기도 하며. 중요한 건 그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있어도 여전히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삶, 두려움과 손잡고 걸어가는 삶이다.